내 인생에 영향을 미친 책들
내 인생에 영향을 미친 책은 이것!

뮤지션은 누구를 좋아해요? 영화는 어떤 감독이 좋아요? 책은 어떤걸 좋아해요? 같은 질문을 받았을 때 나는 막연함을 느낀다.

대체 내가 좋아하는 그 많은 보물들 중에 어떻게 하나를 집어서 얘기해야 한단 말인가... 그래서 나는 되묻는다. xx씨는요? 라고.

이러면 나오는 대답에 따라 형편에 맞추어서 대답해 주는 편이 좋다.

- 비틀즈라면 비치 보이스의 얘기를, 샘 레이미면 제임스 카펜터의 얘기를, 하루키라면 에쿠니의 얘기를.

그러니 당연한 얘기지만 밑에 적는 책들도 그저 생각이 나는 대로 적는 몇 권일 뿐이다.

1. 내일의 죠 (치바 테츠야)

... 숱하게 울궈먹은 그 대사를 또 적을 필요가 있을까. 나는 이런 만화를 보며 자랐다.
    불타오르는 것을 동경하고, 결정된 운명에 짖어대고, 발광하고, 반항하는 법을 배웠다.
    헝그리, 열혈, 눈물을 삼키며 자신을 사지(死地)로 몰아가는 남자가 있다. 그것을 아름답다고 한다.
    나는 언제건 불행의 늪에 빠져 있을 때가 아니면 지혜의 부싯돌을 켠 적이 없었던 것 같다.

2. 논어 (공자일 리가 있나... 그의 여러 제자들)

... 홍신문화사의 고색 창연한 역본을 읽은 것이 20회독에 가까워진다.
    나는 정리를 던져놓고 '왜냐하면'이라는 단어로 논거를 보여주는 서양 철학의 문장보다,
    이렇듯 간결한 몇 마디로 생각의 자유를 만들어 주는 제자 백가의 책들이 훨씬 좋다.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고 섣불리 열변을 토하기 전에, 먼저 그의 책을 읽어 보라고 말하고 싶다.
    읽고, 갖고 싶은 것은 갖고 버릴 것은 버려라. 그리고 한 번 더 읽어라. 아마 가질 수 있는 것이 더 많을 것이다.

3. 반지의 제왕 (J.R.R. 톨킨)

... 씨앗문화사의 화려한 양장본이 다시 나왔지만, 나는 어쩐 셈인지 황금가지 판본이 제일 좋다.
    무엇보다 '보잘것 없는 존재가 역사를 움직인다'고 믿는 톨킨의 애정 어린 사관이 따스하다.
    그는 간달프의 입을 빌어 이렇게 말하고 있다.

    '죽어야 할 많은 이들이 살아 있고, 죽지 않아야 할 많은 이들이 죽는다. 쉽게 죽음을 판단하고 선고하지 말거라'

    - 그렇다. 그럼에도 나는 복수를 꿈꾸고, 어떤 인간들의 죽음을 진심으로 갈망하고 있다... 이게 인간이라는 거다.

    판타지를 쓰고 싶다면, 그의 영향력 정도는 벗어날 궁리를 해봐야 하지 않을까.
    아직도 기사에 엘프에, 마법과 드워프가 판을 친다. 지겹다. 판타지라면 이만한 세계는 스스로 만들어야 하지 않겠나.
    남이 만든 세계를 물려받아 써서, 어쩔 건데.

4. 재즈파일 (김현준)

... 김현준은 에세이 수준의 재즈 서적들이 난립하던 90년대 후반의 재즈 거품 시대에, 유일하게 학문적인 정리를 거친 개론적 역사서를 낸 사람이다.
    음반에만 의지하여 홀로 듣고, 이론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선지식들을 받아들이며 갈팡질팡해야 했던 재즈 매니아들에게 빛이 되어 준 개론서.
    단지 재즈라는 장르 외에도 이 책 곳곳에는 그의 음악에 대한 사랑이 담겨 있다.
    NEXT의 '영원히' 가사를 빌어 쓴 짤막한 수필에는 한번이라도 가슴벅찬 설레임으로 악기를 잡았던 사람들의 눈시울을 젖게 만드는 힘이 담겨 있다.
    이 책이 나에게 알려준 가장 큰 재산은 이것이다. '음악은 음악 그 자체로 이야기해야 한다' - 음악이 아니라, 모든 것이 마찬가지이다. 중요한 것은 본질 그것뿐이다.

5. 은하영웅전설 (다나카 요시키)

... 게임으로 애니로 만화 코믹스로도 여러모로 대성공을 거두다 못해 작가 자신이 셀프 동인지(외전 4권)까지 써낸 소설-_-;
    재미있다. 삼국연의나 김용의 소설 이후로도 이렇게 캐릭터의 매력에 기대 이야기를 풀어나갈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이 책은 나의 국가관에 가장 큰 영향을 주었다. 현재 내가 갖고 있는 무정부주의, 그리고 전쟁과 군대에 대한 경멸과 증오.
    그것들의 시작이 은영전이다. 웃기는 것은 이 책이 군부대 도서관에도 버젓이 '추천도서'로 걸려 있다는 사실.
    군대와 전쟁만 다루고 있으면 무조건 추천이냐. War pigs.

6. 댄스 댄스 댄스 (무라카미 하루키)

... 하루키의 소설을 한동안 멀리 했던 적이 있다. 단순히 그가 문화적 코드가 된 사실이 싫어서였다.
    남들이 듣지 않는 음악을 듣느라 익스트림 음악에만 심취했던 적이 있었고,
    남들이 내가 듣는 음악을 듣기 시작하면 미련 없이 그 자리에서 떠났던 치졸한 시절도 있었다.
    세간의 평가와 상관 없이 내 스스로의 주관으로 작품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되는 데는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이 책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하루키의 소설이며, 나는 여전히 말할 수 있다. 하루키를 좋아한다고.

7. 의천도룡기 (김용)

... 내가 가장 좋아하는 대막영웅 3부작은 '신조협려'이며, 제일 재미있게 읽는 것은 '사조영웅전'이다.
    그렇다면 왜 이 책을 올렸는가. 나는 삼국연의를 읽으며 인간의 목을 우습게 여기는 간웅을 흠모했고,
    의천도룡기를 읽으며 그 심지를 정화하고 협(俠)을 배웠다.
    그리고 보다 중요한 것은, 마교를 빌어 인간 사이의 '진실'이, 무엇이 정이고 무엇이 사인지를 알기가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이다.
   
    인터넷 뒤에 숨은 사람들은 오늘도, 자신이 속해 있지 않고, 경험해 보지 않고, 짤막한 주워들은 지식뿐인 이들을
    단순히 자신의 시야 안에서 기이하고, 혹은 비도덕적이고, 이해할 수 없다는 이유로 비난하고 매도한다.
    김용은 묻는다. '너는 뭘 알고 있는가? 네가 타인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생각해 보라. 아무 인터넷 게시판이나 좋다. 논쟁이 일어날 만한 주제에 끼어들어서 한 30분 소모적으로 싸워 보라.
    그리고 당신의 제일 친한 친구에게 가서 푸념하는 거다.

    '오늘도 어디서 웬 개념없는 새끼를 만나서... 주절주절'

    그럼 당신의 친구는 당연한 것처럼 당신을 위로하며 말해줄 것이다.

    '아 잊어버려. 그런 새끼는 상대할 필요도 없어.'

    그렇겠지. 그런데, 당신 친구만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당신하고 좀 전까지 논쟁을 벌이던 반대편 사람은 친구가 없을 거라고 생각하는가?
    그 또한 그의 친구에게 가서, 당신의 친구가 당신에게 해준 똑같은 말을 듣고 있을 거라고는 여겨 본 적이 없는가?

    무엇이 정이라고 생각하는가? 인간은 자신의 시야가 머무르는 곳에서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는 존재일 뿐이다.
    마교는 사악한 악의 무리였던가? 세상 사람들은 그렇게 믿다 죽었을 것이다. 허나, 이 소설을 읽은 당신의 생각은 어떤가?

8. 사진학강의 (바바라 런던 외)

... 사진을 어떻게 하면 잘 찍을까요, 라는 질문을 이런저런 온라인 게시판에 올리면 흔히 이런 말을 듣게 된다.

    '많이 찍어보세요'

    '사진은 느낌입니다'

    '내공이 중요하죠'

    '아마추어잖아요. 취미로 고민해서 뭐합니까.'

    그것도 그런대로 좋다. 헌데 남에게 전할 만한 말이던가? 나는 솔직히 느낌과 감성을 내세우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그저 게을러서' 공부를 하지 않는 이들이라고 본다. 좀 더 알아야 사진이 달라질 것을 자신도 알고 있는데,
    단지 배우기가 귀찮은 거다. 시간을 내기가 싫은 거다. 물론 그렇지 않은 이들도 있다. 허나 이런 이들의 사진을 들여다보면 예외라는 걸 발견하기가 참 힘들다.
    보잘것 없는 사진을 그럴듯한 글과 음악으로 치장해 놓은 속빈 강정들.

    인터넷에서 배우지 마라. 그들이 삽질하며 떠드는 선지식보다 이 책을 읽는게 낫다.
    150년동안 검증되고, 증명된 인간의 지식들을 무시하지 마라. 당신이 천재가 아닌 이상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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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랜디 | 2007/01/31 20:07 | Toy box | 트랙백 | 덧글(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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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션☆ at 2007/01/31 20:46
마지막 말씀에 또 움찔합니다. 오늘은 이글루 쪼끔만 돌아다니고 책읽고 자야겠습니다.
Commented by Kainslain at 2007/01/31 21:41
랜디님은 남들과 똑같은 걸 싫어하시는군요.
확실히 인터넷의 지식은 단편적이라 전체적으로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에 도서관에 가서 책을 빌려와서 읽는게 속편하죠; ㅋㅋ
Commented by 디케이 at 2007/01/31 22:55
은하영웅전설!! 참 재밌었죠 ㅋㅋ
저는 중학교 때 호메로스의 <일리야드>에 푹 빠져 버렸습니다. 그 이후로 저도 누구처럼 지중해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게 되었다는;;
Commented by 야생마 at 2007/01/31 23:28
오훗.. 상당히 생각이 상당히 깊으시군요.

같이 대화하면 즐겁겠다는~.~;
Commented by Borntokill at 2007/02/01 00:06
1. 은하영웅전설에 대한 저와는 다른 해석이군요. 창룡전은 도서관에서 볼 때 왠지 외관이 슬레이어스해적판(..)을 보는 듯 해서 안읽었습니다.;;

글쎄요, 혁준군 포스트에 단 댓글은.. 과거 일본의 황국주의,제국주의적 모습이 오버랩되어서 오히려 군국주의의 향수에 젖어 있다고 생각한 거 같네요. 물론 엄청난 비약이라고 전제를 했습니다(라고 도망갈 구석을..;;)

작가 자신의 활동도 우익에 치우친 경향이 있다고 풍문에는 들은 바 있는데..사실인지는 확인해본적 없고, 아무튼 천재에 의한 전제군주정치와 중우정치에 의한 민주정치를 극단적으로 대립시킨 점, 물론 구 동맹세력의 자치권 획득과 입헌군주제 제안으로 마무리되긴 했으나 전제군주정치의 승리.

게다가 제국의 군사국가적 성향. 이런 것들이 제겐 그렇게 보였나 봅니다. 작가의 구 일본제국의 향수에 젖은 오마쥬 정도로.

2. 인터넷에서 소모적 논쟁을 저도 무척이나 (혁준군 포스트의 조악한 댓글로 보셨겠지만) 즐기는 편입니다.
논쟁 자체는 있어야 하고, 그 논쟁 자체에 대한 자신의 상대방에 대한 평가 역시 있어야만 하는게 아닐까요?

논쟁에 있어서 자신의 주관에 따른 투덜거림도 반드시 수반되는 거라고 봅니다.(제가 자주 투덜거려서 변명하는건 아닙니다.;;) 자신의 주관은 자신이 보이는 시야 안에서 세워지겠고, 가치판단도 역시 그 안에서 밖에 이루어지겠죠. 한계가 있을 수 밖에요.

다만..자신의 주관에는 철저하면서 남의 주관을 짓밟으려한다거나 자신의 입맛에 맞게 만드려는 행태들이 있다는 게 정말 싫을 뿐입니다. 그래서 전 자주 싸웁니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던가요..;;

3. 사진.. 어떻게 보면 그냥 찍히는 게 찍는 건데.. 어떻게 보면 뭘 찍을지, 어떻게 찍을지가 항상 고민되더군요.

그래서 이거저거 찾아보기도 하고, 사진관련 에세이들이나 책도 읽어보고(사진학강의도 읽어봤다죠.), 정말 Fact에 기반한 기술 외에는 이렇다하게 계량화되거나 할수 있는 사진에 대한 정의는 안 생기더군요.

제가 내린 결론은 결국 사진의 결과물은 자기 만족이더군요.
내가 찍고 싶은 것을 찍는 것. 그게 남는게 아닐까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제가 찍는 사진이란 지극히 자기감성적인 물건이 되어버리더군요..

따라서 남들에게 해줄수 있는 말이란게 고작 마음에 드는 걸 찍어라, 감성이다, 그정도가 되어버리더군요. 다만 항상.. 적어도 Fact에 기반한 사진기술은 내 사진을 표현하기 위한 하나의 중요한 도구니까 제대로 익혀두고, 써먹어라..라는 말은 덧붙이긴 합니다.

남들의 시선과 의견..물론 무시할 수야 없겠지만, 내 맘에 드는 사진이 장땡이네~ 하는 심산으로 저는 삽니다. ^^;;;
적어도 저는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사진은 찍지 않는다고 자부하고 있습니다.(라지만 항상 추천과 리플을 구걸하고 있더군요.orz)

아무튼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앞으로도 링크 걸고 시야 넓히는 데 도움좀 받겠습니다. ^^;;
Commented by 하치 at 2007/02/02 01:11
은하영웅전설, 예전에 하이텔 시절 어렵게 게시판에서 중고로 직거래해서 샀는데.
지금까지 안 읽고 있다죠-_-;;;;;;;;;;;;;;쿨럭 어찌 이런일이..박아놓고 까맣게 잊..-_-
Commented by 랜디 at 2007/02/02 10:11
블로그가 생긴 이후로 제일 긴 덧글이군요 - -; 시간 내주셔서 우선 감사부터 드립니다, Borntokill님.

1. 은영전만 해도 시니컬하게 툭툭 던지는 글들이 많은 편인데, 창룡전을 보면 팬이라도 좀 불편할 정도로 시니컬하죠.

그 대상이 어디냐...-_-; 일본 정부입니다. 또한 그 지향은 무엇인가...? 개인의 인권이죠.

실은 은영전만 봐도 작가의 권력에 대한 경멸과 인간에 대한 불신에서 오는 냉소를 읽을 수 있습니다.

제국의 승리는 군국주의의 승리라기보다 능력과 결과가 전부다, 라고 말하는 유물론적 가치관을 가진 작가의 어두운 역사 해석이라고 읽었습니다.

거의 10페이지를 쉬는 적이 별로 없을 정도로 전쟁과 국가에 대해 냉소적 멘트를 날려주는 작가가 제국주의의 향수를 가졌다고 보긴 힘들죠.

전쟁을 다룬 것은 이 소설의 '소재'일 뿐, 그것이 '목적'이라고 보긴 어렵다고 봅니다. 창룡전에서는 '정치'라는 소재로 일본을 비난하고 있습니다 :)

2. 이 점에 대해선 별로 드릴 말이 없는데요. 저도 거의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던 적이 있어서... (웃음) 사람은 계속 변화하는 건가 봅니다.

3. 저는 사실 '남한테 보여줄게 아니면 사진을 왜 찍나'라는 생각을 갖고 있고 실제로도 그렇게 말을 하고 다닙니다.

만약 찍은 사진은 하드나 서랍에만 넣어놓고 오직 자신만 보는 사람이 있다면 자기 만족이라고 인정해주겠습니다 (웃음)

세이노의 표현이긴 한데 냉정히, 얼음보다 차갑게 본질을 들여다보고 싶습니다.

자기 만족이란 혹시 스스로도 만족하지 못한, 즉 남은 더더욱 만족하지 못하는 사진을 변명하기 위한 수단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사진은 찍고, 보는것. 그러므로 보는 사람이 존재하는 것이죠.

음악으로 바꿔놓으면 공연은 하지 않고 합주만 하는 밴드가 있다면 자기만족이라고 볼수도 있겠습니다.

필름 스캔을 왜 하겠습니까? :) 남들 보여주려고 하는 거잖아요. 듣기 좋은 덧글 달리면 기분 좋지 않겠습니까? 그런 겁니다.

하치님, 은영전 구판은 별것 아니지만 조금 프리미엄이 붙은 상태입니다. 혹시 안 읽으신다면 제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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